한 가지 아르바이트를 길게 한 적은 별로 없지만
이것저것 잡다하게 많이 해 봤다.
맨 처음 했던 것은 고3 수능이 끝나고
아는 분 사무실에서 했던 사무보조.
컴퓨터쪽 관리와 간단한 영상 및 그림 편집 등을 도와드렸다.
3개월 쯤 하고 입학 할 때 쯤 그만 뒀다.
다음은 가장 빡셌던 일로 기억하고 있는 TGI 대학로 점 러너.
러너랑 음식을 나르는 사람을 일컫는다.
내 기억엔 친구 소개로 02년 4월 말 부터 시작해서
5월 31일까지 딱 하고 그만 뒀다.
시급 2500원에 하루 4시간 이었는데
4시간 동안 음식을 들고 계단을 3-40번 오르락내리락 했다.
처음엔 집에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바로 뻗어 버리곤 했고
이로 인해 소라 영상제를 하지 못해서 소라에서 짤릴 뻔 하기도 했다.
일 시작후 3일안에 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소리에
오기로 한 달을 버텼고 솔직히 더 할 수도 있었지만
일의 문제가 아니라 월드컵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때 우리나라가 4강 까지 갔었으니
알바 하느라 제대로 못봤으면 아마 평생 후회했겠지.
지금 생각해도 그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일을 한 이후로 어떤 알바를 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한 동안 집부와 소라 때문에 알바 따위 할 시간조차 없었고
03년 소라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알바 재개.
이번엔 치킨&호프 집이었다.
동네에 있는 치킨집으로 주인 아저씨가 치킨 맛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사실 맛있기도 했다.
뭐 크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다진이가 학원 알바를 소개시켜주는 바람에 3개월 정도 하고 그만뒀다.
학원 알바는 해봤던 알바중 가장 땡보였다.
주 6일 출근에 하루 9시간 정도 근무에 월 100을 받았는데
말이 9시간이지 가서 칠판 지우고 남는 시간은 거의 놀았다.
나중엔 칠판을 정말 깨끗하게 지우는 기술을 터득하기도 하였다.
학원 사정이 녹록치 않다고 하여 2개월 만에 짤렸다 ㅋ
제대 후에 다시 하게 된 알바.
이번엔 지하철 택배였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간단한 물건을 배달하는 일로
돈은 별로 못 벌었지만, 서울 및 수도권의 지리를 많이 익히게 되었고
한 번도 안 가본 동네에 가보는 등 했던 알바중 가장 즐거운 알바였다.
일본 출국을 위해 3개월 후 그만 두었다.
일본에 가서는 윤영호의 뒤를 이어 잔나 라는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바로 그 가게.
시급이 1200엔 이라는 매력적인 조건과 재밌는 동료들 덕에
일본 생활 내내 그 알바 한 가지만 했다.
단 그 때 이후로 허리와 귀 상태가 좀 안 좋긴 하다.
귀국해서부터는 정기적인 알바는 하지 않고 있다.
단, 번역이나 영상번역과 홈페이지 제작 등으로 조금 씩 돈을 벌었고
지금은 매달 30$ 기본급과 손님이 생길 경우 추가 커미션을 받는 조건으로
월드 커머셜 홀딩스라고 하는 하와이 부동산 및 주식회사 설립을 도와주는 회사에서
파트너쉽으로 일하고 있다.
또한 홍콩인과의 소규모 무역을 통해 용돈 정도 벌고 있고
장학금을 받고 한국외대 일본어대학 홈페이지 운영자를 하고 있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많이 해 봤다.
맨 처음 했던 것은 고3 수능이 끝나고
아는 분 사무실에서 했던 사무보조.
컴퓨터쪽 관리와 간단한 영상 및 그림 편집 등을 도와드렸다.
3개월 쯤 하고 입학 할 때 쯤 그만 뒀다.
다음은 가장 빡셌던 일로 기억하고 있는 TGI 대학로 점 러너.
러너랑 음식을 나르는 사람을 일컫는다.
내 기억엔 친구 소개로 02년 4월 말 부터 시작해서
5월 31일까지 딱 하고 그만 뒀다.
시급 2500원에 하루 4시간 이었는데
4시간 동안 음식을 들고 계단을 3-40번 오르락내리락 했다.
처음엔 집에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바로 뻗어 버리곤 했고
이로 인해 소라 영상제를 하지 못해서 소라에서 짤릴 뻔 하기도 했다.
일 시작후 3일안에 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소리에
오기로 한 달을 버텼고 솔직히 더 할 수도 있었지만
일의 문제가 아니라 월드컵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때 우리나라가 4강 까지 갔었으니
알바 하느라 제대로 못봤으면 아마 평생 후회했겠지.
지금 생각해도 그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일을 한 이후로 어떤 알바를 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한 동안 집부와 소라 때문에 알바 따위 할 시간조차 없었고
03년 소라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알바 재개.
이번엔 치킨&호프 집이었다.
동네에 있는 치킨집으로 주인 아저씨가 치킨 맛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사실 맛있기도 했다.
뭐 크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다진이가 학원 알바를 소개시켜주는 바람에 3개월 정도 하고 그만뒀다.
학원 알바는 해봤던 알바중 가장 땡보였다.
주 6일 출근에 하루 9시간 정도 근무에 월 100을 받았는데
말이 9시간이지 가서 칠판 지우고 남는 시간은 거의 놀았다.
나중엔 칠판을 정말 깨끗하게 지우는 기술을 터득하기도 하였다.
학원 사정이 녹록치 않다고 하여 2개월 만에 짤렸다 ㅋ
제대 후에 다시 하게 된 알바.
이번엔 지하철 택배였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간단한 물건을 배달하는 일로
돈은 별로 못 벌었지만, 서울 및 수도권의 지리를 많이 익히게 되었고
한 번도 안 가본 동네에 가보는 등 했던 알바중 가장 즐거운 알바였다.
일본 출국을 위해 3개월 후 그만 두었다.
일본에 가서는 윤영호의 뒤를 이어 잔나 라는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바로 그 가게.
시급이 1200엔 이라는 매력적인 조건과 재밌는 동료들 덕에
일본 생활 내내 그 알바 한 가지만 했다.
단 그 때 이후로 허리와 귀 상태가 좀 안 좋긴 하다.
귀국해서부터는 정기적인 알바는 하지 않고 있다.
단, 번역이나 영상번역과 홈페이지 제작 등으로 조금 씩 돈을 벌었고
지금은 매달 30$ 기본급과 손님이 생길 경우 추가 커미션을 받는 조건으로
월드 커머셜 홀딩스라고 하는 하와이 부동산 및 주식회사 설립을 도와주는 회사에서
파트너쉽으로 일하고 있다.
또한 홍콩인과의 소규모 무역을 통해 용돈 정도 벌고 있고
장학금을 받고 한국외대 일본어대학 홈페이지 운영자를 하고 있다.
역시 대단하신 ㅜㅜ






St.Veiry
계속 나왔던 콜라 서비스.....ㅎㅎㅎ